나는 실천신학대학원초등학교에서 실천신학을 연구해오고서 '하나님의 선교'라는 관점으로 교회 공동체를 바라보게 됐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성령 안쪽에서 다같이 친교를 나누며 '세움'을 받아, 궁극적으로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신 것함께 '보냄'을 받은 공동체다. 그러니 교회 다양한 구성원이 각자의 삶 속에서 하나님정부 가치를 품고 인생을 살아 내는 것이 이것들보다 중요합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교회가 잘되는 것에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목숨에 있다. 또 한번말해, 사랑이 요구되는 세상과 타자를 위해 교회가 존재합니다. 이러한 마음에 '과연 주님께서는 내가 여성 담임목사로서 어떤 형태으로 목회해 나가기를 원하실까' 하는 걱정이 더해졌다. '남성주의적 목회'는 내가 생물학적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의 고민은 교우들과 본인이 만나면서 약간씩 달라져 갔다. 교회 공동체 내부에서 말씀을 맡은 이로서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한꺼번에 그 교회 공동체를 이루는 각 지체의 빛깔과 목소리 역시 중요합니다는 것을 거듭 느끼게 됐다. 결국 그 말씀을 세상 속에서 살아 내야 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곧 '교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뜻에서는 내 예비가 부족했기 때문에, '어떠어떠한 목회를 해야 할 것입니다'는 목표 의식과 비전으로 가득 차 있지 않았기 때문에, 거꾸로 더 마음을 열고 교우들 목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었던 것 같다. 저러면서 나와 저희 교회 공동체에게 교회란 '다같이 이루어 가는 공동체'라는 의식이 형성됐다.
처음부터 저희 교회가 어떤 공동체이길 원하는지 교우들과 대부분인 설명를 나눴다. 답안을 정해 놓지도, 신속하게 결론을 내리지도 않았다. 목회자를 비롯해 연장자·직분자 등 어느 누구도 발언을 독점하지 않기를 바랐다. 감사하게도 저희 교회는 서로를 존중하며 논의를 나눌 예비가 돼 있었고, 각자가 자기의 음성을 냈다. 교회 크기가 작으니 서로 이럴 때이런 경우 논의해서 다양하고 새로이운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첫해에는 공교회로서 뜻을 살려 '교회력에 따른 설교'를 중심으로 예배를 드렸는데, 바로 이후에는 설교에 질문과 대답을 함유된 토론이 들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이러해서 이듬해부터는 특별 절기 때를 제외하고는 요한복음을 중심으로 대화식 말씀 나눔 기한을 가졌다. 목회자가 최선으로 각 본문의 파악를 돕는 설명을 하여 핵심 주제를 전하면, 교우들이 함께 질문과 깨달은 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 상대적으로 시간 제약을 크게 받지 않는 유연함을 가진 교회여서 그런 시도가 가능했던 것 같다.
이와 같은 대화하며 교회를 함께 가꾸어 가는 공정에서 저희 교회의 지향이 조금씩 불러일으키게 됐는데, 전부의 지향은 남들이 가진 요건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다. 우선 교우들의 거주지가 멀리 흩어져 있었기 덕분에 자연스럽게 공간을 소유하기보다 공간을 온라인예배 '공유'하는 공동체를 지향하게 됐다(최근 공유 금전적 관점에서 예배당 공유에 대한 새로운 시도가 크게 있는데 반가운 일이다). 아울러 주일예배 외에 다른 주말 예배나 그룹이 없는데, 이 https://en.wikipedia.org/wiki/?search=온라인교회 상황은 모이것은 예배보다 흩어져 드리는 '생명의 예배'를 우선시하는 전부의 지향과 자연스럽게 맞아저조해진다. 이 같은 그들의 지향은 코로나바이러스 팬데믹 속에 더 빛을 발했었다. 공간 중심, 모이 상황은 예배 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거꾸로 빠르게 온라인 예배로 전환할 수 있었고, 일방향적인 매체가 아닌 쌍방향적 논의가 할 수 있는 한 모습의 온,오프라인 예배·모임을 하며 더 깊고 친밀한 교제를 나눌 수 있었다.